K- 한류의 원조 백제 문화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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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한류의 원조 백제. 자랑스러운 옛 백제의 문화를 찾아 공주부터 부여, 완주, 전주, 익산까지
떠나 보는 탐방. 백제의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체험하고, 마이산의 정기를 받으며 오르는 힐링 하이킹과
채석강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즐길 수 있는 여행.
♧ 대표 관광지 및 여행지역
공주 무령왕릉, 부소산성, 낙화암, 백제문화단지, 마이산, 전주한옥마을, 전주난장
미륵사지, 부안 내소사, 채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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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1인기준
389,000원 부터~여행기간 | 년 00월 00일(목) ~ 1970년 01월 03일(토) / 2박 3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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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함사항 | - 교통 : 전용차량 - 숙박 : 완주 상관리조트 - 식사 : 조식2회 / 중식3회 / 석식1회 |
불포함사항 | - 국내여행자보험 / 기타 개인경비 / 2일째 석식 불포함 |
인솔자정보 | |
여행자보험 | - 불포함 |
참고사항 | [안전 유의사항] - 여행일정 및 자유시간 중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안전사고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 특히 안내원(가이드.인솔자등)의 주의사항 및 기본적인 안전수칙은 반드시 준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그 외에도, 기본적인 개인의 안전쑤칙을 지키지 않아 발생한 사고는 본인에게 책임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각종 시설물 및 놀이시설 이요시, 시설물에 대한 이용방법 및 조작법을 숙지한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 고지대(고산지대) 관광시에는 본인의 건강상태, 에상되는 위험 (두통, 구역, 구토, 호흡장애, 의식장애 등의 증상) 등을 고려하여 관광하시기 바랍니다. [방역대책] - 모든 차량은 방역이 완료된 차량으로 배정 - 여행중에도 수시로 환기 및 차량 내 소독 - 여행 당일 모든 고객의 발열 체크 후 탑승 - 37.5도 이상 발열시 귀가 조치/ 추후 100% 환불 - 모든 고객 마스크 착용 필수-KF94권장 - 차량 이동 및 관광지에서도 마스크 착용 필수 - 모든 차량 내 손소독제 비치 - 차량 탑승 전 손세정 필수 - 가이드 및 승무원 마스크 착용 근무 - 안전 지침 수시로 당부 - 여행 중 자주 손 씻기(30초 이상) - 철저한 예방 수칙으로 모두의 건강을 지킵시다. [예약안내] - 상기 일정은 천재지변이나 현지사정으로 인하여 변경될 수 있습니다. - 좌석은 지정석이 아니고, 자유석임을 알려드립니다. - 최소 출발인원은 8명 기준이며, 미달시 행사가 취소 될수 있습니다. - 출발일 3~4일전에 확정 통보 또는 취소 통보 문자로 발송해드립니다(근무일 기준) - 문자 미수신자는 고객센터로 예약 건 확인 전화 필요합니다. - 출발지, 출발시간 10분전에 대기하셔서 성함/연락처 확인 후 출발합니다 - 출발일 1일전 오후(근무일 기준)에 탑승정보 안내 문자 보내드립니다. - 출발 당일 탑승시간에 미탑승시 여행 경비는 환불되지 않습니다. |
백제 왕족들이 잠들어 있는 무덤이며, 세계문화유산
공주시 금성동과 웅진동에 연접한 옛 지명은 공주읍 송산리 宋山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웅진시대(475~538) 백제의 왕과 왕족들의 무덤이다. 원래 17기의 무덤이 있었지만 현재는 무령왕릉을 포함하여 1~6호분까지 7기만 복원되어 있다. 이들 무덤은 만들어진 형태에 따라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과 벽돌무덤[塼築墳]의 두 종류로 구분된다. 1~5호분은 백제가 전통적으로 사용한 굴식돌방무덤으로, 돌로 널방을 만든 후 천장을 돔(Dome) 형태로 둥글게 처리하였으며, 6호분과 무령왕릉은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 터널형 널방 앞에 짧은 터널형 널길을 가지고 있다. 무령왕릉을 제외한 나머지 무덤들은 도굴로 인하여 부장품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지만 웅진시대 백제 문화의 우수성과 활발했던 대외교류를 확인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유적이다. * 무령왕릉(武寧王陵) 백제 제25대 무령왕(재위:501~523)과 왕비의 합장 무덤이다. 1971년 5호분과 6호분 배수로 작업을 하던 중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무덤은 중국 남조에서 유행하던 벽돌무덤[塼築墳]으로, 널방은 연꽃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았으며 남북길이 4.2m, 동서너비 2.72m, 높이 2.93m이다. 벽면에는 등잔을 올려 놓았던 등감(燈龕)과 창문시설을 설치하였다. 특히 입구에서 출토된 지석(誌石)은 무덤의 주인공과 무덤을 만든 연대를 말해주고 있다. 송산리분군에 있는 무덤 중에 유일하게 도굴되지 않은 것으로, 왕과 왕비의 금제 관장식을 비롯하여 총 108종 4,600점의 유물이 출토되어 백제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인식하게 하였다.
찬란했던 백제의 기품 있는 세계문화유산
부여에 들어서면 시가지 북쪽에 검푸른 숲을 이룬 해발 106m 의 나지막한 부소산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에는 수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떨어져 죽음으로 절개를 지킨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사적), 해맞이하는 영일루, 성충ㆍ흥수ㆍ계백의 백제 충신을 모신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백제 군인의 움집 수혈병영지 발길 닿는 곳마다 발걸음을 붙잡는 토성들, 백제의 역사와 백제왕실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다.
백마강에서 바라보는 절경의 기암절벽
낙화암은 백제 의자왕(재위 641∼660) 때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이 일시에 수륙양면으로 쳐들어와 왕성(王城)에 육박하자, 궁녀들이 굴욕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고 이곳에 와서, 치마를 뒤집어쓰고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죽은 장소로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훗날 그 모습을 꽃이 떨어지는 것에 비유하여 낙화암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절벽에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낙화암(落花岩) 글씨가 선명하게 보인다. 낙화암의 기암절벽은 백마강에서 배를 타고 돌아갈 때 더 잘 보인다.
백제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건립한 한국 최대 규모의 역사테마파크
충청남도 부여군에 위치한 백제문화단지는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우던 백제역사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건립한 한국 최대 규모의 역사테마파크이다. 넓은 부지 위에 웅장한 백제문화의 흔적이 남았다. 백제의 왕궁인 사비궁은 삼국시대 왕궁의 모습을 최초로 재현했다. 백제의 왕실 사찰 능사는 부여읍 능산리 유적을 실물 크기로 복원했다. 중문인 대통문을 지나 마주하는 능사 오층석탑은 단지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건축물이다. 위례성은 한성백제 시기의 성으로 사비궁과는 다른 시대 백제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제형루에 올라서면 단지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완주 상관리조트
태고의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명산
진마이산은 소백산맥과 노령산맥의 경계에 넓게 펼쳐져 있는 말의 귀모양으로 생긴 두 봉우리를 말하는 것으로 섬진강과 금강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동쪽에 솟아있는 숫마이봉은 667m이며, 서쪽에 솟아있는 암마이봉은 673m이다. 마이산은 전체가 바위로 되어 있으나 관목과 침엽수, 활엽수 등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으며, 화암굴, 탑군, 금당사 등이 있다.
한옥의 그윽한 전통미와 함께 고전적인 우아함이 어우러지는 쉼이 있는 공간
근대사 체험박물관
근대사 체험 박물관으로 7080 감수성을 그대로 재현해 낸 전북 유일의 테마박물관
완주 상관리조트
백제 최대 가람, 미륵사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중 하나
* 백제 최대 가람, 미륵사지 *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 있다. 신라 선화공주와 혼인한 후 왕이 된 마동 즉, 무왕(백제 30대왕 600-641)이 선화공주와 함께 용화산(현재의 미륵산) 사자사의 지명법사를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때 갑자기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여, 이를 계기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삼존을 위하여 전(금당), 탑, 낭무(화랑)을 세웠다고 한다. 이와 달리 미륵사의 창건에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신앙만이 아니라 정치적 목적이 있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즉 백제의 국력을 확장하기 위해 마한 세력의 중심이었던 이곳 금마에 미륵사를 세웠을 거라는 추측이다. 백제 최대의 가람인 미륵사를 세우는 데에는 당시 백제의 건축·공예 등 각종 문화 수준이 최고도로 발휘됐을 것으로 짐작할 뿐만 아니라, 신라 진평왕이 백공을 보내 도와주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당시 삼국의 기술이 집결 되었을 것이다. * 미륵사지의 또다른 유물, 미륵사지 석탑과 당간지주 * 미륵사지에는 두 가지의 유물이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그 하나는 미륵사지 석탑이고, 다른 하나는 미륵사지 당간지주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국보 제 11호로 현재 높이 14.24m이고 우리나라 최고, 최대의 석탑이다. 석탑은 거의 전면이 붕괴되어 동북면 한귀퉁이의 6층까지만 남아있으나 본래는 9층으로 추정된다.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잔잔하게 걷기 좋은 절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이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조선 중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웅보전의 꽃문살에서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불상 뒤쪽 후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다. 대웅보전 현판은 원교 이광사가 쓴 글씨이며, 부속암자로는 입구의 지장암과 청련암이 있다. 현존하는 당우 및 중요 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보물 고려동종, 보물 법화경절본사경, 보물 괘불 등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요사채, 설선당, 삼층석탑이 있으며 내소사 일원은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일주문에서 시작되는 600m의 전나무숲길은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었으며 사계절 색다른 모습으로 관광객을 맞이하고 있다.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맨 서쪽에 있는 해식절벽과 바닷가.
면적 12만 7372㎡. 전라북도 부안군 변산반도 맨 서쪽,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있다. 옛 수군(水軍)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全羅右水營) 관하의 격포진(格浦鎭)이 있던 곳이다. 지형은 선캄브리아대의 화강암, 편마암을 기저층으로 한 중생대 백악기의 지층이다. 바닷물에 침식되어 퇴적한 절벽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하다. 주변의 백사장, 맑은 물과 어울려 풍치가 더할 나위 없다. 채석강이라는 이름은 중국 당의 이태백이 배를 타고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흡사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여름철에는 해수욕을 즐기기 좋고 빼어난 경관 때문에 사진 촬영이나 영화 촬영도 자주 이루어진다. 채석강에서 해수욕장 건너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붉은 암벽으로 이루어진 적벽강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채석강 [彩石江]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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